이런 동아일보 기사가 있었다.

 

 

 

그런데... 사람들의 선행이라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원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생각된다.

사람들은 자발적인 선행을 하고 그 뿌듯함을 느끼고 싶어하지, 남에게 강요된 선행을 마지못해 하고 

옆구리 찔려서 절하게 되는 선행을 절대 원하지 않는다.

 

버스기사는 그 한마디로 뿌듯한듯 자기가 잘했다고 생각하고, 임산부도 감동받았을 지 모르지만

승객들 입장에서는 양보하려다가도 지금 양보하면 버스기사의 강요에 못이겨 자리를 양보하는 비굴한 선행이 되기 때문에

선행을 할 이유가 상당부분 없어져 버리고, 양보를 하게 되더라도 임산부에게 양보한 그 뿌듯함을 전혀 느낄 수 없게 된다.

 

인사, 사과, 축하 이런것도 다 마찬가지이다.

위에서도 살짝 언급한 옆구리 찔러서 절받기라는 속담처럼, 내가 우러나서 인사하는 것이 아니라

남이 시켜서 하는 인사는 결국 시킨 사람만 뭔가 더 뿌듯하고 올바른 듯한 상황을 만들어주고, 

정작 절을 한 당사자는 권력에 굴복한 사람으로 만들 뿐이다.

 

그럼 버스기사는 선행을 한 것일까?

결과적으로 임산부가 기분이 좋았다고 하니 결과적 선행일 수는 있겠다. 

하지만 임산부가 조금 더 똑똑한 사람이어서, 오히려 그런 버스기사의 말이 양보할까 망설였던 사람마저도

단념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는 걸 알았다면 기분이 나빠졌을 수도 있다.

그러면, 앉을 가능성도 낮추고 기분도 나쁘게 만들었으니 결과적으로 선행이 아닌게 될 수도 있다.

아무리 의도가 좋더라도 충분히 여러 구성원의 입장과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면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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